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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개론 [미학은 미를 탐구하는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에 대한 입장 차이, 에피쿠로스 입장에서 비평하는 키스하는 경찰관, 바움가르텐이 주장하는 “표상”이란 무엇인가?]

by DarangS2 2023. 3. 11.

 

목차

1. 미학은 미를 탐구하는 학문인가? 아닌가? 한 입장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3가지 이상 들어 서술하시오.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에 대한 입장 차이를 비교 서술하시오.

3. 에피쿠로스 학파가 불루 노지즈의 <키스하는 경찰관(2005)>을 보았다고 하자. 에피쿠로스 입장에서 이 작품을 비평해 보시오.


1. 미학은 미를 탐구하는 학문인가? 아닌가? 한 입장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3가지 이상 들어 서술하시오.

미학은 미를 탐구한다.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을 보고 ~처럼 느끼는 것인 ‘표상’을 바움가르텐은 미와 동일시해서 미를 다루는 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표상학에서 영혼(=생각하는것)은 표상하는 능력이지만 우리는 육체가 제한되어 있어서 입장에 따라 최소한의 생각으로 혼연, 판명, 어두운 표상으로 구분한다. 두 번째 근거로는 미학과 아름다움의 관계이다. 미학의 미학자들은 예술을 집중해서 보고 그 인상을 연구한다. 예술은 세 가지로 압축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예술은 자기에게 인상 깊은 것을 그리는 모방이다. 두 번째로 예술은 표현 된 것을 볼 때 감정(쾌)을 느끼는 것으로 불쾌 또한 쾌에 속한다. 안 보이는 것도 그려야하는 것처럼 예술은 감각에 의존하고 이러한 감각적 경험 중 특히 미적 경험 즉 아름다운 것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의 미를 다루는 방식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미를 아름다운 형태인 이데아라고 한다. 이 이데아는 좋고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의미하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무엇을 아름답다고 얘기할 때 그 전제는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평가가 가능하다.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에 대한 입장 차이를 비교 서술하시오.

플라톤에서 미는 좋음의 이데아의 다른 말이다. 여기서 최고의 이데아는 좋은 것,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좋음의 이데아 안에 미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이성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이데아란 그자체로 모든 감각 대상에 독립해 있으면서 감각대상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꼴을 의미한다. 이것을 이성을 통해서 포착 가능하고 우리는 육체에 제한 되어있기 때문에 비유로밖에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이성을 통해 얻는 것이고, 이것은 감성이나 상상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좋은 이데아는 더 좋은 이데아의 길로 인도해준다.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은 이데아에 대한 모방이다. 한마디로 실재에 대한 또 다른 실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모방은 대상의 형상을 찾아 모방하는 것으로 이 예술은 쾌를 불러일으킨다. 이 쾌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라고 했는데 카타르시스는 쾌를 불러일으킨다. 고통스러움과 쾌락이 동시에 주어져서 인식되는 것처럼 비극, 희극, 서사시처럼 카타르시스를 대중들에게 주면 잘 된 것이다.


3. 에피쿠로스 학파가 불루 노지즈의 <키스하는 경찰관(2005)> 을 보았다고 하자. 에피쿠로스 입장에서 이 작품을 비평해 보시오.

에피쿠로스는 이데아를 원자라고 칭하는 데모크레토스의 원자론을 수용하는 세계관을 가진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으며 세계는 원자들의 우연한 충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신은 없고 원자만 존재한다. 그가 추구하는 쾌는 육체적 쾌와 정신적 쾌로 나뉘는데 미를 감상 할 때도 쾌를 중점적으로 감상한다. 키스하는 경찰관은 나라를 지키고 안전하게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인 남자경찰관 두 명이 추운 겨울 서로의 엉덩이에 손을 댄 채 사람이 없는 숲속에서 키스를 하고 있다. 이사진을 보고 일반인들은 이 두 사람을 게이이고 사회의 부정적인 눈을 피해서 숲속에서 몰래 키스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이 그림을 보고 경찰관이 서로의 육체적 쾌를 느끼고 있다고 볼 것이고 그들에게서 그 행위들은 미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작품은 절제와 금욕이 아닌 쾌만을 추구한다. 더 나아가서 이처럼 미는 내가 정신적으로 향유하는 것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남이 예술이라고 해서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예술의 가치가 높은 호메로스의 시를 폄하한 것처럼 예술은 육체적인 쾌와 같이 갈수 있기 때문에 없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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